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는 어렸을 적 내 우상이었다. 맨발로 초록빛 들판을 뛰어다니고, 산양유를 입맛을 다시면서 마시는 모습, 그리고 싱그러운 향기가 나는 풀침대.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하이디 만화영화 전반에 깔리던 청명한 피리 소리였다. 그 피리 소리가 단순히 어린 목동이 나무를 꺾어 부는 게 아니라 가늘게 빛나는 플룻에서 나오는 멜로디였다는 건, 만화영화가 다 끝난 다음에야 알았다. 가장 높은 음까지, 마치 새가 즐겁게 지저귀듯 아무렇지도 않게 올라가는 플룻의 소리. 원래 목동의 피리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만큼 온화하고 목가적인 풍경을 연상케 하는 플룻의 소리를 들어보라. 잊어버렸던 그 초록빛 순간들이 다시 한번 되살아 날 것이다. 싱그럽게 풀내음을 풍기던 바람,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 플룻은 우리가 잊어버렸던 모든 향수들을 그 가느다랗고 긴 관 끝에서 불러내 풍선처럼 둥글게 부풀어 오르게 한다. 그리고 그 풍선은 비눗방울이 되어 바람을 타고 흘러간다.
플룻은 어떤 악기와도 잘 어울린다. 루리에는 바이올린을 곁들였고 모차르트는 하프를 끌어들였으며 텔레만은 어찌 보면 플룻과 비슷해 보이는, 그러나 다른 리코더와 호른을 주선했다. 풀랑은 가장 고전적인 악기, 피아노와 함께 했다. 이는 묘한 평화를 불러 일으킨다. 그 뿐만이 아니다. 바흐는 관현악 모음곡 2번에서 플룻을 사용한다. 바이올린보다 가볍고, 팀파니 채만한 굵기의 플룻. 그러나 지지 않고 높고 청명한 소리로 관객석을 분주하게 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