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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의 오페라와 독일의 국민오페라
<모짜르트의 오페라>

글록의 오페라 개혁 이후 나폴리풍의 오페라는 나라마다 특성을 살린 국민 가극으로 나타나려는 경향을 엿볼 수 있다.
모짜르트(Mozart, W. A. 1756∼1791)는 본래 오페라에 주력을 두어 많은 작품을 썼지만, 다른 작곡 분야에도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그는 오페라를 극적인 표현의 한 수단으로서 역할을 하는 드라마로 생갹하기보다는 오히려 교향곡같이 철두철미하게 음악적인 과제로서 생각하였다. 이런 사고방식은 어떤 의미에서는 18세기를 통해 이탈리아의 오페라가 지향하던 이상의 궁극적인 실현을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특성은 뛰어난 독창성에 우아함과 함축성 있는 깊이로 훌륭한 대위법의 지식을 자유자재로 음악에 전개시키는데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오페라에 나타난 형식의 풍부함과 여러 형식을 극적인 목적을 위해 교묘하게 사용한 기량은 아주 놀란만하다. 그의 극적인 진실과 음악의 아름다움은 휘귀하여 완전에 가까운 것이었으나, 극적인 것보다는 음악을 중요시해 다루었다. 그는 또한 오페라 부파라는 희가극과, 노래극이라는 독일의 징시필의 묘미를 살려 대성공을 하였다.


<독일의 국민 오페라>

18세기를 통해 독일의 국민적인 오페라는 정상적인 성장을 보지 못했다. 한때 함부르크에서 움트기 시작한 오페라는 쇠미해졌으며, 헨델과 글룩 등은 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 양식으로 작곡하였다. 모짜르트의 경우는 징시필의 높은 예술성을 보였고, 그가 1791년에 발표한 오페라 『마적』이후 독일의 유명한 작품으로는 베토벤이 1803년에 쓴 오페라 『피델리오(Fidelio)』와, 1821년 베를린에서 초연한 베버의 『자유의 사수(Der Freischutz)』뿐이다.
베토벤의 오페라가 노래의 취급 밥업에 있어서 기악적인 결함은 있어도 거기에는 깊은 내용을 지니고 있다. 그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데는 서투른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긋의 소재가 그가 생각하는 높은 이상의 기준에 미달하는 어떤 드라마도 거부하였으며, 『피델리오』에서는 그의 성격의 일면을 잘 발휘하였다. 오페라 형식에 있어서는 이탈리아 양식을 썼는데, 그것은 당시 이탈리아 오페라가 얼마나 일반적으로 보편화 되었는가를 말해 주는 것이다.
19세기 이후 독일의 오페라는 먼저 베버(Weber, C. M. 1786∼1826)의 『자유의 사수』를 손꼽을 수 있으며, 이 오페라로 큰 성과를 올린 그는 마침내 독일의 국민가극을 수립하였다. 이보다 앞서 18세기 후반 괴테와 같은 독일의 시인들 사이에 국민 오페라의 수립에 대한 여론이 있으면서, 19세기에 이르러 낭만파의 사조(思潮)가 고조되어 민족적인 오페라가 생기게 되었다. 이 시기의 독일 오페라 작곡가로서는 시포어(Spohr, L. 1784∼1859)·플로토(Flotow, F. 1812∼1883)·니콜라이(Nicolai, O. 1810∼1846)등 적지 않은 작곡가들이 나타났다.


<바그너의 악극>

베버에 의해 이루어진 독일 국민 가극이후 별로 주목할 만한 작곡가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바그너가 출현함으로써 한번에 19세기 낭만파 오페라의 대사업을 완수하게 되었다. 이렇게 한 시대의 성과를 모두 집약하여 어떤 스타일을 최종적으로 종합하는 작곡가가 나타남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지난날의 팔레스트리나와 바하 등이 좋은 예이다.
한편 작곡활동을 통해 하나의 양식의 종말을 기할 뿐만 아니라, 새시대의 시작을 고하는 작곡가도 나타났는데 그같은 인물로는 베토벤과 바그너를 꼽을 수 있다. 바그너는 예술의 바탕을 인간적인 것 즉 인간 전체의 표현이라 했으며, 이같은 표현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모든 종류의 예술이 모두 뭉쳐 하나의 종합예술 즉 그가 말하는 전체예술 작품을 만들려고 하였다. 그의 오페라 『혼례』·『요정』·『연애금지』·『리엔찌(Rienzi)』·『방황하는 네덜란드인(Der fliegende Hollander)』·『탄호이저(Tannhauser)』·『로엔그린(Lohengrin)』까지의 가극을 19세기 독일 낭만파 오페라의 완성이라 하겠다. 그 이후의 악극(Musik-drama)을 그 자신은 형성화 된 음악의 행위(Fersichtlich gewordene Taten der Musik)라 불렀다.
그는 이전의 특징을 활용하여 이론과 실제에 있어서 의욕에 찬 새롭고 혁신적인 양식을 개척하였다. 그 혁신이란 음악적인면 뿐만 아니라 극 전체의 문제를 이에 포함시겼다. 그리하여 지금까지의 성악본위 오페라를 지양하고, 리스트와 베를리오즈가 관현악에서 창안했던 표제음악과, 고전에서 남긴 기악곡의 가장 복잡한 기교와 문학 등 사상적인 새로운 것들을 집약하여 구사한 오페라를 창안하였다.
종래의 오페라는 음악적 예술작품이었지만, 악극은 연극적인 예술작품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극의 구상을 했고, 대사를 썼으며, 작곡을하였다. 그리하여 시와 음악과 극의 융합으로 생애를 바쳐 악극을 완성시켰다. 무한 선율을 써서 레시타티브와 같은 이야기식의 멜로디를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웅장한 반주음악에 치중했고, 음악을 극도로 이용하는 방법으로는 관현악을 인도하는 지도동기(Leitmotiv)를 사용하였다. 이 지도동기는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에 있는 고정악상(Idee fixe)과 비슷한 것으로, 일정한 인물·사건·감정 등에 고정적인 멜로디와 동기를 두고 극이 진행할 때 이러한 악구의 출연으로 고정악상이 부과된 것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한편 화성의 표현 능력을 철저히 추구하여 확대시켰으며, 반음계의 폭넓은 사용 등은 마침내 조성의 붕괴를 초래하는 위기마저 갖게 하였다. 이와같이 바그너는 글룩의 이상을 실현시킨 위대한 작곡가로서, 독일만이 가질수 있는 독일의 오페라를 세계적인 것으로 지향시켰다.




R. 시트라우스(Richard Georg Strauss 1864∼1949)도 악극 분야에서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의 초기의 작품으로는 1892∼93년에 작곡한 악극 『군트람(Guntram)』을 비롯한 『살로메(Salome)』·『알렉트라(Elektra)』등이 있는데 이러한 것을 강렬한 긴장미가 있는 후기 낭만파 표현주의에 도달시켰다. 이렇게 규모가 큰 관현악의 극적인 발전에 큰 비중을 차지한 작품들은 노래하는 요소가 한층 더 자취를 감추었으며, 그 결과 그와 현대 오페라와의 차이를 나타낸 것이다. 한편 『장미의 기사』등의 작품에서는 의고전주의적인 경향을 보였으며, 로코코와 바로크적인 전통에의 복귀를 시도하기도 했다.
독일 낭만파의 후예로서 출발한 시트라우스는 20세기 전반에 걸쳐 격렬한 유럽음악의 변동의 와중에서 새로운 수법에 대항하였고, 바그너 수법의 영향은 물론 표현주의의 수법도 채용하였다. 전반적으로 보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독일의 코믹 오페라(Comic Opera)는 민요풍의 오페라와 시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를 제외하면 별로 좋은 작품이 없다.
그밖의 오페라 작곡가로는 피쯔너(Pfitzner, H. 1869∼1949)·실링스(Schillings, M. V. 1868∼1933)·시레커(Schreker, F. 1878∼1934)등이 있으며, 현대에 있어서는 쇤베르크(Schonberg, A. 1874∼1951)와 그의 제자 베르크("Berg, A. 1885∼1935)등이 있다. 베르크의 『보째크』는 자못 이름이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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