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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ard Haitink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출생국가

Amsterdam, Netherlan

활동년도

1929/03/04~

116

네덜란드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

베르나르드 하이팅크는 전형적인 대기만성형의 음악가라고 할 수 있다. 초기의 컨서트헤보우와의 레코딩에서는 음악적 깊이나 밸런스 등에서 어느 정도는 개선의 요지가 있어 보였다. 그 때문에 컨서트헤보우는 노련한 오이겐 요훔과 하이팅크와의 쌍두제를 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70년대로 들어서며 빠르게 예술적인 발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결코 지휘에 과장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유의 소박하고 성실한 접근방식은 특히 독일 낭만파 작곡가의 작품에서 빛을 발한다. 브람스의 교향곡 시리즈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등은 현재까지도 빛나는 명연으로 남아 있다.


베르나르드 하이팅크는 1929년 3월 4일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다.


10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잡기 시작한 그는 고교 졸업후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암스테르담 음악원에 들어가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그리고 펠릭스 흐푸카를 사사하여 지휘법을 배웠다.
이 학교 졸업후에는 바이올린주자로 힐베르슴의 네덜란드 방송 필하모니에 취업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본격적인 음악인생을 걸어갔다. 하지만 보다 깊은 음악수양을 쌓고자 54년과 55년 두 번에 걸쳐 네덜란드 방송 연합이 개최한 ‘하기 국제 지휘법 강좌’를 수강하고 페르디난트 라이트너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55년에는 네덜란드 방송 연합의 부지휘자가 되어 보다 탄탄해진 위치에서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네덜란드 방송 필하모니에서 수석 지휘자인 파울 반 켐펜이 죽자 하이팅크가 종종 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또다른 위치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56년에 처음으로 공개 콘서트에 출연한 하이팅크는 케루비니의 ‘레퀴엠’을 지휘함으로써 지휘계에서 두터운 신임을 받게 되었다. 마침 이즈음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급병으로 쓰러져 컨서트헤보우 관현악단의 연주회에 핀치히터로서 기용되었는데 이것은 그에게 있어 지휘자로서 또다른 길을 가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하이팅크는 줄리니의 공석을 훌륭하게 소화해 네덜란드에서 하이팅크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결국 이런 저런 좋은 평판으로 인해 그는 57년 불과 28세의 젊은 나이로 네덜란드 필하모니의 수석 지휘자로 취임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동년 그는 컨서트헤보우의 수석 지휘자 베이눔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LA 필하모니에 초청되어, 미국에서도 지휘를 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었다. 이어서 60년에는 국제적으로 그의 이름이 알려져 파리, 브뤼셀, 샌프란시스코에서도 객원 지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61년에는 급사한 베이눔의 후계자로서 드디어 컨서트헤보우의 지휘봉을 잡는 행운을 잡았다. 그는 대 지휘자 오이겐 요훔의 보좌역으로 하여 2인제의 상임 지휘자 체제를 갖추며 컨서트헤보우를 이끌어 가기에 이른다. 63년에는 애든버러 음악제에 출연해 영국 음악계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듬해인 64년에는 단독으로 컨서트헤보우 관현악단의 예술감독 겸 수석지휘자로 임명되어 드디어 지휘자로서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이후 하이팅크는 67년 런던 필하모니의 수석지휘자 겸 예술고문으로 취임했는데, 이것은 향후 12년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는 79년 게오르그 솔티에게 지휘봉을 넘겨 줄 때까지 이 악단을 이끌었다) 이외에도 73년에는 빈 필하모닉 객원 지휘자로 활동했고, 레코딩까지 하는 관계로 발전하였다.


베르나르드 하이팅크는 유럽 정상의 일반적인 지휘자들과는 달리 콘서트에서 지휘 경력을 쌓아 이후 오페라까지 진출한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아마도 이것은 종교적인 사정으로 오페라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네덜란드라는 나라의 사정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하이팅크는 77년 암스테르담 컨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한국에 와서 이대 강당에서 지휘를 하기도 했다. (80년대로 들어와 그는 코벤트가든 왕립 오페라 극장 관현악단 상임 지휘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하이팅크는 말러, 브루크너, 베토벤, 브람스 등의 교향곡 전집 등을 완성했는데 하나같이 높은 완성도를 보이는 수작들이다. 이외에 슈베르트, 멘델스존, 차이코프스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전집에서도 그 역량이 잘 드러난다. 그는 일부 작품만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 도전하면 전집을 모두 연주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브람스 교향곡에서의 중후하고 당당한 스케일, 슈베르트에서의 소박한 아름다움, 베토벤에서의 시적인 서정의 흐름좋은 연출력과 노래하는 듯한 미적인 감성,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에서의 세련되고 명쾌한 추진력 등은 지휘자로서의 하이팅크의 높은 감성을 잘 증명해 준다. 드뷔시나 라벨 등과 같은 근대 프랑스 레퍼토리에서도 또다른 좋은 솜씨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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